절약형과 과소비형으로는 안 갈린다 — 소비 성향을 만드는 세 가지 축
같은 30만원을 써도 남는 만족이 다른 이유. 결정·기준·공유 세 축으로 보는 소비 성향과, 만족이 오래 가는 소비의 조건.

같은 달에 30만원을 쓴 두 사람이 있다. 한 명은 "이번 달 잘 썼다" 하고, 다른 한 명은 카드값을 보며 후회한다. 금액은 같은데 남은 게 다르다.
우리는 보통 소비를 절약형과 과소비형 둘로 나눈다. 그런데 이 분류로는 위의 차이가 설명이 안 된다. 아끼는 사람도 후회하고, 많이 쓰는 사람도 만족한다. 얼마를 쓰느냐보다 어떻게 쓰느냐가 결과를 가른다.
돈은 한 종류가 아니다
경제학은 오랫동안 돈을 대체 가능한 것으로 봤다. 만원은 어디서 왔든 만원이라는 것이다. 리처드 세일러는 여기에 반대했고, 그 공로로 2017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.
사람은 실제로 돈을 머릿속 여러 계좌에 나눠서 관리한다. 이걸 심적 회계라고 부른다.
- 월급 30만원은 아까운데 보너스 30만원은 덜 아깝다
- 생활비 계좌에서 나가는 5만원과 '나한테 쓰는 돈' 계좌에서 나가는 5만원은 무게가 다르다
- 세일로 아낀 3만원은 새로 생긴 돈처럼 느껴져서 그 자리에서 또 쓴다
경제적으로는 전부 같은 돈이다. 그런데 우리는 계좌마다 다른 규칙으로 쓴다. 소비 성향이란 결국 이 계좌들을 어떻게 나눠 놨는가의 문제다.
지불의 고통은 사람마다 다르다
또 하나. 결제할 때 느끼는 저항의 크기가 사람마다 다르다. 연구자들은 이걸 지불의 고통이라고 부른다.
같은 물건을 사도 현금으로 낼 때가 카드로 긁을 때보다 아프다. 돈이 눈앞에서 사라지는 게 보이기 때문이다. 간편결제는 이 고통을 거의 0에 가깝게 만들었다. 지문 한 번에 결제가 끝나면 뇌가 돈을 썼다고 인식할 시간이 없다.
이 고통이 지나치게 큰 사람도 있다. 살 형편이 되는데도 못 산다. 결제 버튼 앞에서 반년째 멈춰 있는 장바구니가 그 증거다. 이 사람들은 돈이 안 새는 대신 살 수 있었던 것을 계속 못 사고 산다.
세 축이 성향을 만든다
소비 성향은 이 두 가지가 조합되면서 갈린다. 정리하면 축은 세 개다.
결정 — 즉흥이냐 계획이냐. 마음에 들면 그 자리에서 사는 쪽과, 살 것을 미리 정해두고 그것만 사는 쪽. 즉흥은 기회를 잘 잡고 계획은 후회가 적다.
기준 — 가성비냐 만족감이냐. 같은 값이면 더 싸게 샀는지가 중요한 쪽과, 값보다 그걸로 얻는 기분이 기준인 쪽. 가성비는 돈을 지키고 만족감은 경험을 남긴다.
공유 — 자랑이냐 조용이냐. 산 걸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은 쪽과, 나만 알면 되는 쪽. 자랑은 만족을 두 번 느끼고 조용은 남의 기준에 안 흔들린다.
| 축이 기운 쪽 | 강점 | 조심할 지점 |
|---|---|---|
| 즉흥 | 놓치는 게 없다 | 3만원짜리 열 번이 눈에 안 띈다 |
| 계획 | 후회할 결제가 적다 | 결정에 드는 시간이 값보다 비싸질 때가 있다 |
| 가성비 | 같은 돈으로 더 많이 얻는다 | 비교하느라 정작 안 사고 끝난다 |
| 만족감 | 쓴 돈이 기억에 남는다 | 기분이 기준이면 기분 나쁜 날이 위험하다 |
| 자랑 | 반응이 만족을 늘려준다 | 반응이 없으면 만족도 사라진다 |
| 조용 | 내 취향이 정확해진다 | 아무도 안 말려줘서 브레이크가 없다 |
여덟 유형 중 틀린 유형은 없다. 다만 축이 기운 쪽마다 새는 방식이 다르고, 대응도 달라야 한다.
만족이 오래 가는 소비에는 조건이 있다
성향이 뭐든, 쓰고 나서 오래 남는 소비에는 공통점이 있다. 세 가지다.
첫째, 물건보다 경험. 2003년 밴 보븐과 길로비치의 연구가 이걸 정면으로 다뤘다. 사람들에게 최근 산 물건과 최근 한 경험을 각각 떠올리게 하고 만족도를 물었더니, 경험 쪽이 일관되게 높았다. 물건은 사자마자 기준선이 올라가서 금방 당연해지는데, 경험은 기억으로 남고 이야기가 되면서 오히려 미화된다.
둘째, 자주 쓰는 것. 하루에 한 번 쓰는 물건에 20만원은 싸고, 1년에 한 번 쓰는 물건에 5만원은 비싸다. 가격을 사용 횟수로 나눠보면 대부분의 후회가 설명된다. 후회하는 소비는 대개 비싸서가 아니라 안 써서 후회하는 것이다.
셋째, 기다린 것. 사기 전에 기다리는 기간 자체가 만족의 일부다. 여행은 떠나기 전 몇 주가 여행의 절반이고, 반년 벼르다 산 물건은 3분 만에 산 물건보다 오래 좋다. 즉흥형에게 24시간 규칙이 잘 듣는 이유도 여기 있다. 하루를 기다리면 안 살 것은 걸러지고, 살 것은 더 좋아진다.
성향을 바꾸지 말고 한 칸만 옮긴다
소비 성향은 성격에 가깝다. 즉흥형이 계획형이 되지도 않고, 될 필요도 없다.
대신 축 하나에서 한 칸만 옮기면 된다. 즉흥형은 결제만 하루 늦추고, 계획형은 자기한테 쓰는 예산을 따로 떼두고, 가성비형은 비교를 30분으로 끊고, 자랑형은 반응 없어도 좋을 물건인지 한 번 묻고 사면 된다.
전부 고치려고 들면 하나도 안 바뀐다. 제일 자주 후회하는 축 하나만.
나의 소비 성향 테스트는 12문항으로 세 축이 어디로 기울었는지 재서 여덟 유형 중 하나를 찾아준다. 돈이 어디서 새는지가 궁금하다면 내 돈이 새는 구간 쪽이 더 맞다.